여성극 <여자, 죽자, 살자> (월간 말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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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간 말 작성일2007.12.25 조회4,786회 댓글0건본문
연극으로 본 호주제 // 여성 마당극 <여자, 죽자, 살자>
- 2003년도 여성부 공동협력사업 선정작
"호주제? 뭐 이런 '법'이 다 있어?"
진은주 (큰들문화예술센터 기획실장)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을 정리하다보니 여섯 살 된 아들이 엄마인 나의 호주가 되길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어 동사무소 직원에게 문의를 했더니 아들에게 포기각서를 받아 오라고 했습니다.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들에게 각서를 쓰도록 하여 가지고 갔더니 아직 인지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어린아이기 때문에 그 아들이 쓴 각서는 효력이 없다고 하더군요. 각서의 효력도 인정받지 못하는 어린 아들이 대학졸업 학력에 서른 여섯 된 엄마의 호주가 되는 것이 무슨 법입니까?"
법률구조법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편찬한 <우리 평등하게 살래?!>라는 책자에 실린 글이다.
바로 이게 '호주제'란 놈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호주제도는 우리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일제시대의 잔재다.
다행스럽게도 새롭게 출범한 참여정부의 호주제 개선 의지가 높고 사회곳곳에서도 호주제 폐지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고있어 어쩌면 호주제도는 이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실재로 지난 9월 4일, 법무부에서는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르면 2006년부터 개정민법이 시행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우리 제발 평등하게 살자
호주제 폐지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합의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족의 약화, 전통문화 단절 등의 이유로 유림을 비롯하여 중·장년층, 심지어는 여성계 일부에서도 호주제 개·폐정을 반대하고 있어 그의 실현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런 때에 큰들문화예술센터 (대표 전민규, 이하 큰들)에서는 호주제도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여성극 <여자, 죽자, 살자>를 (배선우 작, 고동업 연출) 제작, 공연해 호주제 폐지에 대한 여론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지난 2003년 1월, 여성부는 <2003년도 여성단체 공동협력사업>을 공고하였다.
비영리 민간단체를 비롯하여 남녀평등과 여성권익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해외 입양아 문제, 양성평등한 가족문화 조성, 여성폭력 근절,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등 다양한 사업과제를 두고 여성부와 함께 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해 일할 단체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여성부가 제시한 그 많은 과제들 중에서 '호주제 폐지'라는 과제를 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호주제도의 불합리성이 빚어내는 사례들을 접하게 될 때마다 "법"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제도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큰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라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과제를 두고 접근한 작품은 그리 수월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여성극이 여성부 공동협력사업으로 선정되자마자 어쩌면 올해 안에 호주제도가 폐지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호주제도가 폐지 된다는것 자체는 두 손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작품의 방향을 아예 다른 방향으로 진행시켜야 하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호주제도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되 그것에서 파생되는 남녀불평등의 문제들을 같이 다루는 것으로 작품의 방향을 돌렸다.
딸 낳고 아들 낳으면 110점??
요즘 같이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고 '그러잖아도 여자들 세상'이라는 남자들의 원망섞인 푸념이 거세지는 이때, 아직도 여자들이 할 말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엔 아들 낳기 위해 수차례 낙태를 감수하는 사람, 아들 못 낳아 은연중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 딸 둘 데리고 외출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사람을 의식하게 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들 낳고 딸 낳으면 100점, 딸 낳고 아들 낳으면 110점'이라는 속설속엔 딸을 한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자신을 희생해 남동생 뒷바라지하고 집안을 책임지도록 하는 소위 '살림밑천'으로서의 인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물론 나는 딸. 아들이 110점이라는 말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어른스럽기 대문에 나온 좋은 말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한다. - 이런 모든 인식 속에는 남녀차별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호주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성마당극 <여자, 죽자, 살자>엔 한평생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온 한씨와 그녀의 두딸 재숙과 경숙이 등장한다. 두 딸은 성장해 결혼을 하지만 큰딸 재숙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이혼한 후 재혼한다. 재숙의 딸 새봄이는 새아버지와 성이 다른 것 때문에 학교에서 호적등본을 가져오라고 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한씨의 둘째 딸 경숙은 딸만 둘을 낳아 하루하루 시어머니의 아들 타령을 듣고 살아간다.
이 작품 속에는 한씨, 재숙과 경숙 자매, 그리고 손녀딸 새봄 등 모녀 3대뿐만 아니라 며느리 생일날 아들 셋 낳은 사람의 속옷을 선물하는 시어머니,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가는 데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남편들, 가장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호주라는 짐을 떠안게 된 어린 아들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본을 집필한 작가 배선우씨는 이들 등장인물들이 그려내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이나 남녀 성차별, 그리고 현재의 불합리한 호주제가 비단 여성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남녀 모두들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여성극 <여자, 죽자, 살자>는 이렇듯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저마다 '죽고 싶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한씨 모녀 3대를 통하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다양한 여성문제들을 그려냈다.
기득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거 굴레예요.
큰들의 배우는 모두 열 한명이다. 큰들 대부분의 작품은 열 한명의 배우가 모두 출연하지만 어떨 때는 외부에서 객원 배우를 캐스팅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배우들은 연기 외에도 음악, 의상, 무대미술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스텝의 역할까지 도맡아서 해왔다.
그런데 이번 마당극 <여자, 죽자, 살자>에서는 다섯명의 여성배우들만 출연을 하게됐다. 작품에 배우로 등장하지 않는 나머지 남성 단원들은 두 명은 악사로, 나머지 네 명의 단원들은 소품과 의상, 음악을 맡거나 여성 배우들의 매 끼니 식사를 준비하는 스태르의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농담 삼아 여성극이니 만큼 여성 단원들이 앞에 나서고 남성 단원들은 보조자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흘리기도 했다.
여성단원들은 장난삼아 일부러 의기양양한 척 하기도 하고 그에 보조를 맞춰 남성단원들은 일부러 기죽은 척 하기도 하며 재미있어 했다. 새 작품을 창작 할 때마다 한가지씩 재미있는 캐릭터 또는 작품 속의 명대사들이 있고 실재로 그런 것들은 연습현장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 양념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번 작품의 제작과정의 재미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의도하거나 연출하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 '장난'이 '남녀평등', 또는 '여성의 지위향상'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남녀가 모두 평등해진다고 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 그 어느 한쪽이 상대를 누르고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빛낼 수 있는 협력자, 보조자가 되는 것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억압의 역사가 컸던 탓이지 남성들을 누르고 자리를 여성들이 대신 메워보겠다는 여성들의 적대감이나 도전의식이 커진 것은 아닌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호주제도를 폐지하자고 하는 주장들이 여성의 지위를 높여 보겠다거나 남성들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보면 호주제는 남성에게 일종의 '굴레'일 수있는 호주의 짐을 나눠지겠다는 의미도 된다.
아름다운 희생이 가능하려면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남녀평등', 또는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되는 그런 과정이었다. 그동안 나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여성 운동계에서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여성지위 향상'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 속에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어머니 또는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부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평생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온 아내, 자식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는 자기 인생이 없다고 할 것인가. 뒷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자아'를 잃어버린 강요당한 헌신과 희생이라고만 비하할 것인가.
그런 고민 속에서 나름대로 찾아낸 해답은 '진정한 남녀평등이라는 것은 여자가 사회적으로 앞에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가 스스로 자기 삶에 주인으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자기 삶에 주인 된 자세를 가진 남성은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자기 삶에 주인 된 자세를 가진 여성은 사회로부터 책임지어지는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의 무게를 무턱대고 짊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거나 묵묵히 헌신한다면 그것은 그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자신의 삶도 빛날 수 있음을 깨달은 결과로부터 비롯되는 아름다운 행동인 것이다. 여성극 <여자, 죽자, 살자>도 남성, 또는 여성 그 어느 한 쪽만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으로 만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항상 긴장되기 마련이지만 공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은 긴장감도 더하고 또 한편으론 그만큼 설레임도 크다.
흔히들 문화예술은 사람의 내면을 움직이는 작업이라고 한다.
우리 공연이, 호주제도의 폐지가 가족의 파괴, 남성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기는 일부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래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