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극장이 평일 오후 한 시에마저 성업이겠는가마는, 인디다큐페스티벌 마지막 날 들어선 인디스페이스 상영관에는 빨간 객석 드문드문 박혀 있는 검은 점들이 한 눈에도 몇인지 헤아려질 정도였다. <농민가>는 2007년 봄부터 2008년 봄까지 경남 사천시 농민회 회원들의 일과 일상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제목부터 강한 정치색을 드러내기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과 인터뷰를 한 인연이 없었다면 절대로 관람료 오천 원을 던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농민들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일 년을 얼개로 그들은 왜 부채를 부채로 갚아가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도 논밭을 떠나지 않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농민회 회원 김윤진 씨는 전 해 방울토마토 농사를 망치고 새로 빚을 내어 딸기 하우스를 임대한다. 그는 이 일 년이 남은 생애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는 기간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이듬해 그는 농사일을 접고 만다. 지역 내에서 손꼽힐 만큼의 결과를 냈지만, 임대료를 내고 부채, 비료 값, 인건비를 감당하기에 남은 이익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게다가 외적으로는 한미 FTA와 농업 종사자 수를 줄이겠다는 정부 정책이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사천시 농민회원들은 틈나는 대로 상경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농민들과 합세해 한미FTA반대 집회 대열에 선다. 감 농사를 짓는다는 정창건 씨의 말대로 과일이나 농작물이란 것은 대체재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재배하는 작물이 수입이 안 된다고 해서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시야를 넓혀 감독은 말한다. 농민들의 시위를 보며 농민 아닌 사람들은 농민의 밥그릇 싸움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농민의 밥그릇과 도시민의 밥그릇은 한 밥상 위에 놓여 있다고. 중국산 농작물, 미국산 소고기, 식품 안전성에 관한 논란들은 내 먹을거리가 내 통제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생산될 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누누이 경고해 왔다. 농민의 싸움은 내 먹을거리의 안전을 사수하기 위한 싸움이자 흙을 밟고 살아가야 하는 미약한 존재로서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이 영화는 농민들의 투쟁을 담고 있으면서도 과격한 장면이 없다. 과하다 싶게 소주병이 자주 등장하여 음욕을 자극하는 자극성은 있지만, 관객을 격정적으로 만들 만한 장면에 이르면 감독은 여지없이 한적한 농촌 풍경으로 시야를 돌린다. 감독과의 대화 때마다 감정 조절과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질문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감독의 의지는 확고하다. 자신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 자체가 감독의 정치성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감정 조절의 본질은 감독에게 있지 않고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있다. 전국 농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들은 이른 아침 대절한 상경 버스에 오르지만 길을 막아선 경찰들 때문에 끝내 출발하지 못한다. 관객은 여기서 거친 몸싸움을 기대하지만 이들이 하는 항의는 길을 내어 달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편 길에 주저앉아 맨몸으로 자동차 통행을 막는 게 고작이다. 당신들 때문에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경찰 간부의 말에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 농민도 국민이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마는 게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이들은 그저 자식들이 용돈 보내달라면 없는 돈 끌어내어 송금하고선 풍족하지 못한 돈에 미안해하는 부모들일 뿐이다. 많이 배우지도 못 했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농사밖에 없는 무지렁이 농꾼들이다.
이러한 감성적 울림은 감독의 정치성으로 내닫는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머리끈을 질끈 동여맨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시위대는 누구이고 관객은 누구인가? 흙을 밟으며 생명을 길러내야할 이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청와대 앞 차가운 아스팔트로 모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의 윤덕현 감독은 촬영을 위해 1년간 사천시에 세내어 살면서 함께 삽자루를 쥐고 술잔을 털었다고 한다. 그 노작의 결과 영화제와 지역 상영회를 전전하며 관객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 영화 속 농민들의 1년간 노고의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김윤진 씨는 농사를 그만두었고, 다른 사람들은 부채를 더 큰 부채로 돌려서 새 해 농사를 시작했다. 이 영화에는 <워낭소리>와 같은 목가적 풍경도 부성애의 자극도 없다. 그러나 농촌에 대한, 자연에 대한 환상이 제거된 농촌의 실상은 끼워 맞춰진 소의 눈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이 있다. 이 작품은 5월에 열리는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