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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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ㅇㅊ 작성일2010.11.02 조회5,082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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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축구를 하면 '왜 힘들게 공을 쫓아다니나' 하는 것처럼...
산을 오르면 '왜 힘들게 산에 올라가나' 하는 저였는데...
정말 마음을 열어 즐기며 산을 올라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오르기전에는 정상까지 올라갈 체력걱정.
올라가면서는 언제 정상이 나오는지만 생각하고.
다올라와서는 내려가면 뭐 먹나만 생각하는.
힘든 일에도 즐길 일에도
늘 나밖에 안보이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축구에 이어서 산도 이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도 돌아보면서
옆사람과 함께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올라간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