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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 없이 놓고 간 '위안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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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큰들 작성일2010.03.25 조회5,76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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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놓고 간 ‘위안부 할머니’

故 김순악씨 기초생활지원금 등 평생 모은 1억원 기부

경향신문 | 대구 | 박태우 기자 | 입력 2010.03.25 18:13 |


"내 생전에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게 한이 돼. 내가 죽으면 (위안부 문제가) 잊혀질 텐데 어쩌나…."

'위안부 할머니'인 김순악 할머니가 대장암 판정을 받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김 할머니가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관계자들과 유일한 혈육(김모씨·60)을 불렀다. 유언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평생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 등 에게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할머니."내가 남긴 돈 가운데 절반(5400여만원)은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나머지 절반은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주게."

할머니는 지난 1월2일 82세를 일기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시민모임 측은 25일 대구시를 방문, 김 할머니가 평생 모은 전 재산(1억여원)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기탁했다.

할머니의 유산 집행 대리인인 이정선씨(55·시민모임 운영위원)는 "역사관 건립은 할머니의 '평생의 숙제'였다"면서 "아이들을 그렇게 예뻐하던 할머니로서는 어렵게 사는 소년소녀가장들에게도 마음의 절반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과 위안부 생활지원금 등으로 받은 월 80만원을 아끼고 아꼈다. 여기에 식모살이, 식당 허드렛일 등을 하면서 번 돈도 보탰다.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대구역사관건립추진위는 이 기부금을 밀알 삼아 김 할머니의 애틋한 유지를 잇기로 했다.

대구시와 협의, 교통 접근성이 뛰어난 도심에 330여㎡ 규모의 위안부 역사관을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44년 대구 섬유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고향을 떠났다. 당시 16세였던 할머니는 취업은커녕 군용트럭에 실려 중국 하얼빈과 네이멍구를 거쳐 베이징 위안소 등으로 끌려 다니며 온갖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으로 서울·군산·여수·파주 등지를 떠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할머니는 식모살이, 식당 허드렛일, 공사판 막노동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2008년 일대기를 담은 < 내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 를 출간했다. 그 해 국회 청문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며 일본 정부의 사죄외 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인순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본 정부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면서 "우리 정부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는 데 앞장서 달라"고 촉구했다. 안경욱 역사관건립추진위 상임대표는 "역사관을 할머니가 생전에 소망했던 전쟁 없는 세상, 평화와 여성 인권을 지키는 살아있는 역사교실로 꾸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 대구 | 박태우 기자 taewoo@kyunghyang.com >

댓글목록

ㅁㅜㄱ님의 댓글

ㅁㅜㄱ 작성일

이런 분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역사적 사실들이 그저 이야기가 되어가지요,,,
작은 연못이란 영화도 그렇고 조금은 씁씁해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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