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동체, 대안교육공동체는 들어봐도 '예술공동체'는 처음 들어봤다. 예술공동체는 뭐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지?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에 있는 '예술공동체 큰들'(이하 큰들). 1984년 진주시 상대동에서 '놀이패 큰들'로 시작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경남 전역은 물론 전국을 돌아다녔고, 해마다 일본이나 라오스 등 해외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큰들의 기획력이나 공연 예술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로 손꼽힌다. 경남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지만,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더 알아주는' 공연예술단체다.
◇다른 지역에서 더 알아주는 단체 = 큰들은 2004년 이곳 작팔리에 연습실을 마련하면서 점차 단원 숙소, 사무실을 짓고 2007년 아예 둥지를 틀었다. 진주와 창원에는 따로 지부 사무실을 두고 있다. 33명의 상근 단원이 있고, 40여 명의 진주·창원 큰들풍물단이 있다. 1500여 명의 후원회원이 있으며, 해마다 정기공연을 할 때면 130여 명의 시민풍물단이 참여한다. 정기공연에는 3000~4000명 이상의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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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곤명면 작팔리에 있는 큰들 연습실에 모인 단원들. |
진은주 기획홍보실장은 "해마다 100여 회의 마당극과 풍물공연을 한다. 하동 남해 산청 등 인근 지역에는 매년 정기공연이 짜여 있고, 여수 통영 천안 등 전국으로 공연을 하러 간다"며 "공연 활동만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 국제교류 등의 활동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진 실장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큰들공동체 체험 및 예술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홈스쿨과 대안학교 아이들이 주로 이용한다"며 "체험 후 신입단원 신청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큰들은 크게 극단과 사무처로 나뉘어 있다. 극단은 작품연출부 연기부 소품의상부 등으로 구성돼 있고, 사무처는 기획실, 문화예술팀, 후원회원팀, 재정팀, 농사팀, 시설관리팀으로 소속돼 있다. 물론 공연 작품에 따라 배우가 소품 담당을 하기도 하고, 사무처 소속이 풍물 공연에 나서는 등 역할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상 업무에서 역할이 다를 뿐 단원으로서 기본적인 실력을 다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진 실장은 "단원들은 공연에 쓰이는 옷과 소품을 스스로 만들고, 무대 세트도 직접 짓고 있다"고 말했다.
◇연습 틈틈이 농사도 짓고 닭도 키우고 = 큰들 단원들은 공동 숙식과 공연 활동만 같이 하는 게 아니다. 몇 해 전부터는 '자립 농사짓기'를 시작했다. 공동생활에서 최소한의 기본 먹을거리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다. 단원들은 연습하는 틈틈이 쌀농사에 텃밭 농사는 물론 100여 마리의 닭과 염소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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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들 단원들이 경칩이 되자 지난해 가을 수확 후 땅에 묻어놓았던 무를 파내고 있다. |
서지은 사무국장은 "단원들의 일상 활동은 농사짓기, 공동체로 살림 살기 등이다. 33명 단원들 중 대부분은 여기서 기거하지만 인근 완사, 진주에서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며 "오전 9시 일제히 업무가 시작되는데, 연습이 주요 활동이다. 함께 저녁 먹고 퇴근하는데 공연이 있을 때는 밤늦게까지 같이한다"고 말했다.
길게는 20년 이상 단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권요한(20), 전새별(21) 등 어린 단원들도 있지만, 평균 10년 이상은 됐다는 것이다.
◇"혼자서 2시간 이상 농사일 하지 마라" = 그렇다면 수십 명이 수년 동안 어떻게 공동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일정 기간 공동생활교육을 거쳐 엄격한 규율 속에서 운영될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존 생각을 뒤엎는, '재기발랄하고 느슨한 원칙'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예를 들면 '혼자서 2시간 이상 농사일 안하기'. 혼자서 장시간 일을 하면 오히려 선배들로부터 야단을 맞는다. 지치도록, 싫증나도록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된 일을 오래 해야 할 때는 단원들이 다함께 어울려 신나게 하자는 뜻이다.
또 하나, 매일 아침 조회를 하는데 이게 좀 남다르다. 요일마다 조회 방식이 다른데 한 마디로 좀 '예술스럽다'. 월요일은 회의로 시작하지만, 화요일은 풍물12차, 수요일은 날라리, 목요일은 춤, 금요일은 합창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술공동체니만큼 연습은 하루에 6~8시간 정도 한다. 공연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하는데, 딱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개인 기량에 따라 단체 연습을 하기도 하고 개별 연습을 하기도 한다. 또 단원 전체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밥상모임'이다. 함께 먹는 것만이 아니라 2인 1조가 되어 1주일에 1끼 이상은 단원 식사 준비를 한다.
서 사무국장은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단원들이 아플 때다. 일단 공연 차질이 생기는데,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의의 문제다"며 "지난해는 수술한 단원, 입원하는 단원이 생겨 다른 배우들이 고생을 했다. 같이 생활하며 평소 맞춰놓은 호흡이 있으니 배역 대체가 바로바로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같이 밥 먹고 같이 농사 짓고 같이 마당극·풍물판을 만들고 더불어 삶을 일구며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다 "놀이판을 벌여 온 나라 방방곡곡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이번 주말 <최참판댁 경사났네> 올해 첫 공연 = 현재 큰들은 정기공연에 함께할 '130명 풍물놀이'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올해는 6월 28일(토)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할 예정인데, 100~200명이 함께하는 풍물놀이는 큰들 정기공연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다. 무대를 꽉 채우는 신명난 풍물놀이에 관객들은 같이 입장단을 맞추고, 신명에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이 또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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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11월 하동 악양 평사리에서 펼치는 <최참판댁 경사났네> 공연 장면. |
가깝게는 이번 주말에 여는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났네>도 기다려진다. 2010년 가을부터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시작한 이 공연은 벌써 햇수로 5년째다. 올해는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을 이용해 18회 정도 공연을 하는데, 오는 15일과 16일 오후 2시에 올해 첫 공연을 할 예정이다.
경칩 지나 매화꽃은 까치발을 세워 밤새 벙글고 벚꽃 봉오리는 잠시 숨을 멈추고 발갛다. 혹시나 이번 주말 섬진강변으로 꽃구경 하러 나선다면 하동 악양 평사리에서 펼치는 <최참판댁 경사났네> 마당극을 보며 봄에 겨운 신명을 풀어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봄볕 좋은 날,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큰들 공간에 한 번 걸음해도 좋으리라. 정성스럽게 반기는 사람들의 얼굴을 대하면 '예술공동체 큰들'이 어떤 곳인지 금방 안다.